2019. 5.12

로뎀 교회 주일 예배

말씀 갈 3;23-4;7, 6;31-32

 

하나님의 권속(가족)

우리는 기독교 교리에 대하여 연속적으로 공부하고 있습니다. 지난 시간에는 거듭남, 회개, 믿음, 순종에 대하여 알아봤습니다. 오늘은 하나님의 가족에 대하여 알아보겠습니다. 하나님의 가족이 된다는 것은 한 마디로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 하나님의 가족에 양자가 되어 들어가야 합니다. 양자가 무슨 말인지 아시지요. 양자는 자기 아버지가 아닌 다른 아버지 집안에 아들로 들어가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는 예수를 믿으면 구원 받는다고 배웠습니다. 구원이란 하나님이 먼저 우리를 택하여 부르신 사건입니다. 하나님이 부르셨기 때문에 우리가 돌이켜서 그분을 바라보고 죄사함을 받아 거듭날 수 있습니다. 거듭난 우리는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릅니다. 이때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양자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1;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라고 합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통해서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납니다. 종이 아닌 아들의 신분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구원으로 얻은 새로운 신분이 바로 하나님의 자녀라는 위치입니다. 당시 로마법상 양자가 되면 아버지의 뒤를 이어 모든 상속권을 갖는 동시에 아버지의 전적인 도움과 보호를 받았습니다. 바울은 우리가 구원을 받는 것을 종에서 양자로 신분이 바뀌는 극적인 변화라고 말합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다는 것을 양자됨으로 표현했습니다. 오늘은 바울이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음을 기독교 교리에서 어떻게 설명했는지 그 내용을 살펴보겠습니다.

 

1. 종에서 자녀로 신분이 바뀐 것이다.

 

사도 바울에게 양자라는 개념이 왜 그렇게 중요했을까요? 아마 그 자신이 예수님의 영적인 가족에서 적자(진짜 아들)가 아니었기 때문이었을지 모릅니다. 그는 예수님을 직접 뵌 적이 없었습니다. 예수님의 열두 제자가 아니었을 뿐 아니라 오히려 예수님의 제자들을 핍박하고 체포하는데 앞장섰던 사람이었습니다. 예수를 메시아라고 하는 것보다 하나님의 신성을 모독하는 것이 라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이 때문에 마음에 분노가 일어나 자원하여 크리스천들을 잡으러 다녔습니다.

이 와중에 다메섹 도상에서 바울은 환상 속에서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예수님은 태양보다 더 밝은 빛으로 그에게 다가오셨습니다.

사울아 사울아 왜 네가 나를 핍박하느냐?”

그는 이 질문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예수님을 직접 만난 적도 없는데 무슨 핍박을 했다는 겁니까? 사흘간 눈이 멀었다가 다시 뜨는 과정을 통해서 도대체 예수는 누구인가?”를 바울은 진지하게 질문했습니다. 이 사건을 우리는 다메섹 사건이라고 말합니다. 이 사건 이후 바울은 예수님에 대하여 깊이 연구하고 깨달음을 얻어 바울 신학을 만들어내었습니다.

 

어떤 종이 주인에게 이런 질문을 받았다고 합시다.

평생 종으로 살 것인가 아니면 내 아들이 되어 살 것인가? ”

무슨 생각이 필요합니까? 전혀 망설일 일이 아니지요. 주인의 아들이 되어 살겠다고 답을 해야지요. 이것이 종이 아들로 입양되는 사건입니다. 구원도 이와 똑 같습니다. 구원은 종이 아들로 입양되는 사건입니다.

 

바울은 밝은 빛으로 다가오신 예수님을 만난 후 비로소 자신이 유대교의 율법의 사슬에 메여서 살고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바로 알게 되었습니다. 그는 예수님 때문에 구원받았고, 구원 받았기에 거듭났고, 거듭났기에 하나님의 아들로 입양되었음을 알았습니다.

 

오늘은 갈라디아서를 통하여 그리스도인의 양자됨을 설명하고 하나님의 양자가 되면 어떤 일을 해야 하며 또한 하나님의 양자로서 어떤 좋은 점이 있는지 알아보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3;23-27

 

바울은 갈라디아 교회 성도들이 할례를 주장하는 유대주의자들에게 동조하는 것을 보고 흥분했습니다. 유대주의자들은 예수님을 주로 고백하면서도 믿음으로만 구원 받는 것은 뭔가 부족하다고 주장하며, 할례나 안식일과 같은 모세의 율법도 지켜야한다고 고집했습니다.

바울은 예수님이 그들을 사슬에서 풀어주셨음에도 불구하고 다시 종의 멍애를 매려는 것이나 다를 바 없다고 목소리를 높입니다. 믿음으로 받는 구원이야 말로 완전하다고 외치는 장면입니다.

 

율법이 왜 필요합니까? 어린아이들에게 규율이 왜 필요합니까? 아이들에게 큰돈을 주지 않는 이유는 돈의 가치를 아직 몰라 제대로 쓸 수 없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애초에 하나님은 율법을 사랑으로 주셨습니다. 부모가 자녀를 사랑하는 방식으로 안전상 율법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스스로 율법에 묶여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진정한 사랑을 모르고 율법의 규제만 두려워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는 길은 할례가 아니라 세례를 받아 그리스도의 옷을 입는 것이라고 선포하며 종처럼 조바심을 낼 필요가 없다고 주장합니다, 율법은 모두에게 주어졌습니다. 그러나 율법을 이해하는 데는 서로가 다릅니다.

 

2. 왜 십자가인가?

 

4;1-5

 

상속자가 어리면 후견인의 보호를 받아야 합니다. 장성할 때까지는 간섭을 피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때가 되면 더 이상 간섭 받을 필요가 없습니다. 법적으로 성인이 되면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이런 일을 위하여 하나님께서 아들을 보내어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에 자라게 하셨다고 말합니다. 예수님이 왜 오셨는지, 왜 십자가를 지셨는지, 그리고 왜 부활하셨는지에 대하여 진지하게 공부한 바울은 자신이 예수님을 만난 후 어떻게 변화되었는지를 신학적으로 잘 정리할 수 있었습니다.

부르심을 통해 죄사함을 받은 후 돌이킴으로 거듭나는 모든 과정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자녀로 입양되는 절차였음을 깨달은 것입니다. 나아가 입양을 통해 구약 시대에 종지부를 찍고 새 언약 시대가 시작되었음을 선포하였습니다.

 

3. 양자의 영이 부어지면 자유하다.

 

4;6

 

우리가 살고 있는 시민 사회는 여러 가지 규제로 시민들을 얽어맵니다. 성숙하지 못한 사회일수록 규제는 더 많겠지요. 그러나 사회가 성숙해가면 여러 가지 규제가 완화됩니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율법이 필요할 때가 있습니다. 죄를 규정하지 않으면 사람들이 죄를 죄로 여기지 않음으로 혼란은 더욱 커지게 됩니다. 그러나 때가 되면 하나님께서 자유의지 영역 안에서 각자 아름답게 꽃피울 수 있도록 자유를 허용하십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자녀 삼으셨기에 아들의 영을 보내주셨습니다. 아들의 영을 받은 사람은 하나님을 스스럼없이 아바 아버지로 부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아빠로 부르는 것은 크나큰 특권이자 기쁨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큰 아픔의 하나가 부모 없이 자라는 서러움입니다. 상처받은 아이들이 언제 회복됩니까? 좋은 양부모를 만나면 그 아픔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4;7

 

양자의 영을 받으면 더 이상 종이 아닙니다. 양자됨의 결과는 유업입니다. 아버지가 하시던 일을 아들이 물려받는다는 것입니다. 양자됨의 결과는 또한 유산입니다. 아버지가 떠나면 아버지의 모든 것을 아들이 물려받습니다. 아버지 앞에서 아들은 늘 당당합니다. 심지어 아버지가 가진 것을 나누어 쓰는 것도 거리낌이 없습니다. 아버지 것은 다 자기 것이라고 믿습니다. 이런 풍요 가운데서도 자유를 마음대로 쓰지 않습니다. 아들이 마음대로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아들의 영입니다.

 

나는 이미 죽어 하늘나라에 가 있는 나의 아들에게서 아들의 영을 확인했던 간증이 있습니다. 내가 삼성에서 20년 간 근무하고 명예퇴직을 하여 조그만 사업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좋은 직장에 다니다가 어려운 사업을 하다 보니 어려움과 힘이 드는 일이 많았습니다. 이때 나의 아들이 고등학교 학생이었는데 교회를 잘 다니고 있었던 모양입니다. 아버지의 힘든 모습을 보고 생일 선물로 조그만 카드를 만들어 주었습니다. 그 편지 안에는 아버지 힘드시지요. 힘들 때 교회 다니면 하나님께서 모든 일을 도와주십니다. 그러니 교회에 나오세요라고 적혀있었습니다. 나는 그 편지를 보고 놀랐습니다. 아들이 이 아빠를 걱정하고 있구나 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 힘든 시기를 이용하여 아빠의 영혼구원을 위해 애쓰는 아들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이것이 아들의 영입니다. 그 이후 나는 교회를 나가기로 결정을 했습니다.

 

4. 스스로 종이 될 때 자유가 더 커진다.

 

5;13

 

바울은 자유가 주어졌을 때 육체의 기회를 위해 쓰지 말고 오히려 스스로 절제하도록 권면합니다. 그리고 다시 종노릇하라고 권합니다. 아니 아들이 되라고 할 때는 언제고 또 다시 종이 되라고 합니까?

종의 영을 받아서 종노릇하는 사람과 아들의 영을 받아서 종노릇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두려움에서 종노릇하는 사람과 사랑으로 종노릇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겉보기에는 비슷할 수도 있지요. 그러나 전혀 다른 삶입니다. 회사 생활도 그렇습니다. 교회 생활도 그렇습니다. 겁먹은 얼굴로 남의 눈치나 보며 일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일이 좋아서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 두 사람의 삶의 질은 나중에 크게 달라집니다.

크리스찬은 종에서 양자가 되었다가 다시 종이 되는 삶을 사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자유인이 되었지만 아버지의 뜻을 이루어 드리기 위해 스스로 종이 됩니다.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 스스로 종이 되신 하나님이 아들 예수 그리스도처럼 말입니다.

 

사랑하는 미얀마 젊은이 여러분!

 

오늘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종의 생활에서 풀어 아들로 입양하여 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배웠습니다. 더 나아가 우리 예수님은 자신이 종이 되어서 십자가에 죽으시기까지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은 인간이 받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입니다. 양자됨의 기쁨을 아는 사람은 다른 기쁨에 목말라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기꺼이 낯선 곳으로 떠날 수 있고 좋은 곳으로 향할 수 있습니다.

종교의 길과 신앙의 길은 차원이 다릅니다. 종교의 길은 종의 영을 받고 가는 길입니다. 그래서 불안하고 여전히 불만족스럽습니다. 무슨 일만 있으면 섭섭합니다. 그러나 신앙의 길은 양자의 영을 받는 길입니다. 항상 평안하고 언제나 기쁨이 넘치며 감사가 끊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을 대접할 수 있습니다.

저는 우리 로뎀 안에서도 두 부류의 사람이 있다고 봅니다. 바울의 말대로 종의 영을 받은 사람과 아들의 영을 받은 사람입니다. 우리 모두가 아들의 영으로 충만하고 더 이상 종의 영에 묶여 있지 않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우리는 왜 말씀을 읽습니까? 왜 기도합니까? 왜냐하면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입니다. 자녀는 아버지가 궁금합니다. 아버지의 뜻을 알고 싶어 하고 아버지의 말씀이 그립습니다. 아버지가 마음속에 깊이 간직하고 계시는 사랑의 고백을 듣고 또 듣고 싶어 합니다.

우리는 아바 아버지에게 기도해야 합니다. 아들의 영이 아니고서는 아버지께 부르짖어 기도할 수 없습니다. 어린아이 같이 되지 않으면 하나님을 아빠라고 부르지 못합니다. 하나님을 아빠라고 부르는 것이야말로 세상 어느 것보다 놀라운 특권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준 선물입니다.

로뎀 식구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를 아바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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