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선교사

Ⅰ 독후감

   이 책 <기독교 선교사>는 스티븐 니일이 쓴 세계 선교 역사의 고전이라고 생각이 든다. 그의 선교사로서 선교 현장을 누비며 성경에 나오는 선교 이야기를 현장 고증을 하기도 하고 성경에 나오는 선교 이야기를 당시 고전으로 남아 왔던 것들을 직접 확인하여 설명하기도 하였다. 성경에서 우리들에게 잘 알려져 있지 않던 많은 이야기들을 이 책을 통하여 공부할 수 있었기에 감사를 드린다.

   먼저 이 책의 저자인 스티믄 니일에 대하여 선교 사전에서 다음과 같이 찾을 수가 있었다. 1899년 에딘버러에서 출생하여 Dean Close School과 Cambridge대학교에서 교육을 받았다. 독서를 좋아하였으며 언어에 탁월한 재능을 보임. 히브리어를 독학함. 1915년에 자신이 기독교인이라는 확신을 경험하게 된다.
기독교 사역을 하는데 여자가 방해된다고 여기고 결혼도 하지 않았다 (어떤이들은 동성애자라고도 봄) 신약 성경에 특별히 관심을 가지면서 독일어도 능통하였다 자유 신학교 세계와 공유하면서 익숙했던 보수적 전통에서 떠나 복음주의 중심으로 깊숙이 들어가게 된다.
1924년 졸업 후 남부 인디아로 가서 선교사의 삶을 경험한다. 1928년 인디아에서 사제로 위임받는다. 1939년 인디안 목회자 양성을 위한 티루말라여의 학장으로 취임한다. 여기에서 목회 사역에 심혈을 기울였고 목회자 영적 발전을 위한 책들을 출간한다.
1935년 인디아, 버어마와 실론의 교회 총회 총대가 되어 일하면서 보다 넓은 교회 조직에 관한 견문을 넓혔다.

   스티븐 니일의 기독교 선교사를 읽으면서 저자가 인도에 1939∼44년까지 선교사로 일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이 책은 성경에 나오는 중요 사건뿐 아니라 선교 고전에 나오는 선교 이야기들과 이를 수행한 탁월한 인물에 대해서 집중적으로 기록된 것을 알 수 있었다.

   저자는 아직도 20세기의 세계관을 가지고 오직 기독교만이 여러 가지 불리한 상황 가운데서도 세계종교로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는데, 이번의 뉴욕테러 사건과 미국과 아프가니스탄과의 전쟁을 통해서 동서문명의 충돌을 통한 이슬람의 시대가 도래 하리라고 보고 있다.


   초기의 교회는 기초가 잘 훈련되어진 사람들이기 때문에 신생 기독교 집단의 지도자가 될 수 있었다고 보고 있는데 이는 "전 신자 선교사 주의(every believer"s missionarihood)"를 이미 실천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또한 7차에 걸친 십자군 운동 가운데 7차에는 전염병으로 인하여 왕이 전염병으로 죽는 일이 발생을 했다는 사실은 이미 생화학전쟁의 전례를 보여주는 것이다.

   첫 번째의 시대가 경과하고도 그리스도의 재림이 이루어지지 않자 사람들은 초림과 재림 사이의 간격(already.....not yet)이 있음을 발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선교사들의 이러한 인식 가운데서 지금이야말로 새천년이 시작된 것이 아니라 창조의 종말 시대라고 하는 인식을 하고 살아야 할 것이다. 시카고 대학의 본관 앞에는 지구 종말 5분전을 가리키는 Doom"s Day Clock이 세워져 있다고 한다. 최고의 학자들이 모여서 모든 환경과 생태계의 변화를 보고 이제는 천국으로 이사 가기 5분전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종말론적인 인식이야말로 중요한 것이다.

   로마인이 가는 곳마다 포장되고 잘 감독된 도로가 건설되어 산과 골짜기 위로 똑바로 뻗어나가고 있었다고 말하고 있는데 이는 전문인의 입장에서 보면 IT 산업을 통한 정보고속도로의 활성화와 같은 개념으로 이해를 할 수 있다. 미전도 종족입양본부의 SiRen 선교사(Strategy Information Research Network)의 수준에까지 이르러야 전문인 선교사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중앙아시아의 무역로를 따라 복음을 전파한 집단은 예수님의 인성을 부인한 네스토리우스파(the Nestrius) 기독교였다고 말하고 있는데 전문인 선교사 된 우리는 개척자의 정신을 가지고 창의적 접근지역을 공락해야 함을 배우게 되었다. 종교혼합주의(syncretism)이 성격을 가진 이단들이 창궐하는 종교다원주의(polytheism) 세상에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가지고 들어가야 할 1순위는 21세기에는 인도라고 볼 수 있다. 인도는 현재 10억 이상의 인구를 가지고 있고 세계 컴퓨터 시장에서 유럽 수출의 5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전통적인 교회에서 upgrade된 전문인 선교사들이 생활 가운데 전도자의 삶을 일깨우는 사역은 너무나 소중한 것이다.

   십자군 운동(Crusade)은 너무나 큰 상처를 주었기 때문에 앞으로도 중동 지역의 선교에서는 십자군(Crusade)라는 용어는 사용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C.C.C.(Campus Crusade for Christ)도 중동 지역에서는 다른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 또한 남침례교 해외선교회에서는 foreign mission board를 international board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 이는 선교사를 보호하기 위한 전략이다. 그리스도인 통치자들에 의한 권력(power)이 옛 그리스도의 사랑(love)과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는 교훈을 받게 되는 것이다. 전문인들은 자신의 직업의 전문성에 사역의 전문성을 배양받아 사역을 하는 데 신자의 비세속성의 원리(every believer"s non-secularism)에 기초하여 제3세계에서 사역을 해야 한다. 이를 Paul G. Hiebert 박사는 성육신적인 선교사역이라고 최종적으로 평하였다.

   예수회(the Jesuit)를 앞세운 R.C.C.의 유럽인들은 오직 유럽 문명만이 그 이름에 합당한 가치를 지닌 문명이란 생각을 하면서 우수한 국민이라고 하는 괴이한 콤플렉스를 키우기 시작하였다. 우리는 이러한 세계관들이 발아하여 오늘날과 같은 서구 유럽의 문명(Western Civilization))과 중동의 사라센 문명이 충돌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러한 흐름은 앞으로 중국의 유교사상(Asian Thinking)과의 충돌로서 이어질 전망이다.

   RCC들은 19세기에 프로테스탄트들의 위대한 선교의 세기를 보면서 분발을 촉구하였다. 우리는 전문인 선교의 활성화를 통해서 역설적으로 전통적인 목사 선교사들의 활성화를 축할 수 있다. 이것은 결국 전략적 공유를 통한 전문인 선교라는 개념을 더욱 공고히 하게 할 것으로 본다.

Ⅱ 서론

   본서는 비단 기독교의 선교사적인 관심사 외에도 선교사들의 활동을 통하여 유럽이 지중해 문명권에 편입되는 과정은 물론 특히 동양 사람들의 눈에는 지리상에 발견 이후 제3세계에 대한 서양의 진출과 제3세계의 변모하는 모습에 대하여 어떤 일반 문화사가 주는 것 이상의 빛을 주고 있다고 생각된다. 동시에 독자들은 기독교와 유럽 문화, 기독교 선교와 서양 식민주의 진출을 항상 동일시하려는 선교지 주민들의 경향과 기독교는 서양의 종교도, 더구나 식민주의의 앞잡이도 아니라 바로 인류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복음임을 밝히려는 복음 전도자들의 고통에 대해서도 주목하고 있다.
  
   여기서는 본서에 나오는 각 장별로 많은 이야기들로 구성되어 있다. 내가 보기에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내용들을 요약하여 정리하려고 한다.

Ⅲ 본론

제1장 세계선교

   A. D. 67- 70년 유대인에 대한 주변 민족의 반발은 끝내 유대 전쟁으로 그 절정을 맞았다. 이 전쟁으로 말미암아 예루살렘은 로마 군대에 의하여 회복할 수 없는 파멸을 당하게 되었다.
   예수님의 모국어는 아람어였다. 예수님은 장년이 되어서도 팔레스타인 땅 밖으로 여행해 본 일이 한번도 없었다. 히브리어로 구약 성경을 읽을 수 있었다는 것은 거의 확실하다. 그리고 약간의 희랍 말과 몇 마디의 라틴어를 알았을 가능성도 있으나 그의 사고의 전체적 윤곽은 셈족이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형벌과 부활을 목격하고, 오순절 다락방 사건을 지켜본 유대인들은 예수님의 재림이 곧 올 것으로 생각했으나 이러한 생각은 세 가지의 급격한 변화의 발생으로 인해 수정될 수밖에 없었다.
① 시대가 경과하고 그리스도의 영광스런 재림이 실현되지 않게 되자 신자들은 초림과 재림사이에 처음에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긴 미정된 기간이 끼어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② 교회 운동이 이제 주변에서 예루살렘으로 올라오는 것이 아니라 예루살렘에서부터 주변 세계로 향하여 퍼져나가는 형태로 나타나고 있음이 분명해진 사실이다.
바 울은 자신이 살아서 저 웅장한 종말의 사건을 목격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으나 온 이방에 복음이 증거 되지 않는 한 이 일이 일어날 수 없는 사실도 분명히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그는 로마로 잡히어 가는 순간까지 로마 제국 방방곡곡을 지칠 줄 모르게 돌아다녔으며 하나님의 섭리로 말미암아 황제의 면전에서도 복음을 증거 할 수가 있었다.
③ A. D. 70년 로마에 의한 예루살렘의 멸망으로 예수님의 형제 야고보가 관장하고 있던 예루살렘 교회가 비참한 결과를 맞이하게 되었다.
   최초 1세대의 기독교회는 진정한 선교 교회였다.
① 바울과 바나바는 선교사들이었다. 그들은 조력자를 훈련시켜 세웠다.(골로새 교회의 에바브라, 골1:7)
② 스데반의 순교로 흩어진 그리스도인들은 안디옥에 그리스도교회를 세웠다.
③ 바울이 로마에 갔을 때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그를 영접하였다. 이미 로마에도 복음이 전파되어있었고, 누군가가 그 곳에 복음을 전파한 것이다.
   2세기에 와서 지중해의 그리스도인 세계에 세 곳의 중요한 중심지가 발생하였다. 안디옥, 로마, 그리고 알렉산드리아가 그곳이다. 그러나 이 세 곳 모두 누구에 의해 세워졌는지는 알 수 없다.

제2장 로마세계의 정복(A.D. 100-500)

   최초의 교인들은 팔레스타인의 공용어인 아람어를 말했으며, 대체적으로 초대교회는 희랍어 교회였다. 로마 제국은 희랍어를 상업적인 용도와 교육층의 친숙한 대화의 매체로 채택하고 있었다. 희랍어만 알면 어디를 가든지 희랍어를 할 줄 아는 친구를 만난 수 있었다.
   B. C. 4세기 알렉산더의 정복사업으로 희랍문명은 아시아 깊숙이 들어왔다. 어떤 희랍계 왕국은 2세기 이상이나 인도 국경지대에 존속하여 인도 예술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부처가 입적한 지 여러 세기 동안에도 그 모습을 그림으로 그려진 일이 없었고, 다만 수레를 그려 상징으로 삼았을 뿐이었다. 오늘날 불교 국가들에서 흔히 보는 것과 같은 불상은 희랍-인도 전통의 영향으로 비로소 나타난 것이다.

   여전히 중요한 것은 디아스포라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을 스티븐 니일이 하고 있다는 것이다. 전체 로마인구의 7%에 이르는 많은 수가 디아스포라로 흩어져 갔는데 이들은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잘 준비된 엘리트들로서 즉각적인 응답을 보인 사람들이라고 스티븐 니일은 말하고 있다.

   특별히 안디옥 교회에는 선교형 교회(missional church)로서 손색이 없었는데 이는 다양한 계층으로 구성이 되었기 때문이다. 앞에서 말했듯이 인도에 선교를 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다양한 계층의 세계관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행동하는 믿음으로 선교를 감당할 수가 있는 것이다. 인도의 카스트 제도를 뚫 수 있는 것은 한국의 신라시대의 골품제도를 경험한 한국인들이 세속주의와 인본주의의 사슬을 신자의 비세속성의 원리에 기초하여 생활 전도자(life-style evangelist)로 살 때 가능한 것이다. 기독교인의 숫자가 700만 명으로 줄어 있는 시점에서 한국교회는 이처럼 선교형 교회로의 탈바꿈을 바로 실천해야 할 것이다.

   Patrick의 모습은 예수님과 사도 바울의 정신을 균형 잡힌 감각으로 본받은 것으로 볼 수 있다. 그가 아일랜드에서 탈출하여 불란서를 지나서 영국을 거쳐서 다시 아일랜들로 노예로 돌아온 장면에서는 예수님이 생각이 나고 또 구약의 요셉의 생애가 생각이 나고 여러 차례에 걸쳐서 준비되어지고 선교의 사역을 감당한 부분은 바울의 1차, 2차, 3차, 그리고 로마로의 여행이 생각이 나는 대목이다. 우리 전문인들은 시간과 공간의 개념을 창조적으로 생각하고 선교지의 felt needs를 채워주는 선교를 해야 할 것이다.

제3장 암흑시대(500-1000)

   중세 암흑기(the Dark Age)에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은 현대의 라오디게아 교회 시대의 선교사들이 빌립보서 2장 5-9절에 나타난 성육신의 원리를 제대로 실천하지 않을 때에는 중세의 암흑시대를 계속 재현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다. 신분차별의 개념으로 볼 것 같으면 현재의 한국교회는 중세 기독교의 신성모독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고 본다. 이러한 비평을 받지 않으려면 목회자가 변해야 하며 평신도는 특신도 까지 자라가야 한다. 그리하여 모두가 21세기에 걸 맞는 전문인 선교사로 변화되어야 한다.

제4장 초기 유럽의 팽창(1000-1500)

   유럽의 기독교의 팽창에 관하여 하나님의 목적과 뜻이 무엇이며 거기에 대한 인간들의 반응은 무엇이었을까?
북 유럽 가운데 바이킹이 지배하는 세상 이후에 기독교적인 입장에서 보면 희망이 있는 나라는 덴마크라고 볼 수 있다. 덴마크의 국왕 크누트는 자신의 왕국을 그리스도교의 왕국으로 바꾸는 데 힘을 썼다. 이러한 경건한 통치자들에 의해서 그리스도의 왕국 차원에서 하나님의 나라는 확장되어 나가는 것이다.

   십자군전쟁을 통해서도 라틴계 기독교와 동방계 기독교가 서로 앙숙이 되는 것을 볼 수가 있는 데 현 주민의 요구를 무시하고 꼭두각시 정권이 들어섰기 때문이다.
여기서도 동일하게 교훈을 주는 것은 성육신의 원리를 잃어버렸을 때, 선교의 정신은 사라지고 정복자로 선교지에 나타나는 것이다. 이것은 신성모독이고 선교세계관이 정립되어 하나님의 뜻을 준행하는 선교로 나타나야 한다.

제5장 발견의 시대

   제국주의적 선교의 모델로서 스페인과 포르투갈이 앞장서고 있으며 문화에 대한 깊은 이해가 없이 선교하는 것을 통해서 현지인들의 속내까지 변화시키는 데까지는 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주게 된다. 이것은 선교전략의 부재요 "자문화 우월주의"에 빠진 자들의 횡포로 밖에는 볼 수가 없다. 이러한 대표적인 제도가 "엔코미엔다(Encomienda)"제도였다. 이는 식민지의 통치를 먼저 지배한 자가 알아서 하는 것으로 삼자원칙의 잘못된 적용의 케이스이다. 지배자가 현지의 실정을 무시한 채로 약탈하는 행위이다.

제6장 로마 카톨릭의 선교(1600-1787)

   특별히 인도의 성자 로베르토 데 노빌리(이탈리아 예수회 선교사로 1605년에 인도에 도착)를 통해서 좋은 모델을 발견할 수 있다. 그는 스스로가 인도인으로 행세하였고 카스트 제도의 장단점을 면밀히 검토한 후에 스스로가 브라만 계급에게 나아가서 선생으로서 인정을 받게 되었고 1610년에 쓴 그의 저서 [답변서]를 통해서 선교방법을 신분 높은 카스트를 위한 선교와 하류계층을 위한 선교로 양분을 하는 전략을 보여주었다.

   우리 들은 앞으로 인도선교를 위해서 그의 좋은 모델에서 배울 수 있는 것은 인도에서도 최근에 600만 명의 힌두교도들이 자신이 속한 종교를 벗어나서 불교로 개종하는 자들이 늘어나고 있다고 하며 그 중에 일부는 기독교로 개종하고 있다고 한다. 행태론적인 근본주의(molphological fundamentalism)에 속한 사람들에게 어떻게 점진적인 선교를 실시할 수 있는지를 배우게 되는 것이다. 한국에서의 전문인 선교로의 방향전환도 이제는 씨뿌리는 단계를 지나서 침투하여 줄기를 뻗는 단계가 되었기 때문에 목회자와 평신도를 위한 전문인 선교훈련을 분리해서 해야 할 시점에 이르렀다고 본다. 각각의 동질 그룹의 변화를 신분의 차별이 없는 총체적인 전문인으로서의 타문화권 셀 그룹의 지도자(cross-cultural cell group leader)로 연합을 하는 정신을 가지고 선교전략을 세워야 할 때인 것이다.


제7장 동양과 서양에서의 새로운 출발(1600-1800)

   이 시기 가운데 목사 선교사로서 인도에서 사역한 전문인 선교사의 모델로는 남인도회사에 속한 그리스도인 프리드리히 슈바르츠 선교사였다, 그는 48년 동안을 인도에서 사역을 했는데, 그는 성육신적인 선교사의 자세를 가지고 트랑크바에서 10년, 트리키노플리에서 영국 거주민을 위해서 16년, 탄조레에서 1798년까지 사역을 했으며 2000명의 성도들을 세웠다. 그의 특징은 청년들에게 교리를 가르쳤다는 것이다. 이제는 복음을 전하는 데에 그치지 않고 가르쳐/지키게 까지 이르도록 하는 것이 중요한 시대를 살고 있다. 또한, 중국의 청도와 같은 비즈니스 지역에는 전문인 선교사가 선교에 우선을 두고 사역을 할 것 같으면 엄청난 영혼을 구원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 "중국의 새들백" 지역으로 인식이 되고 있다.


제8장 서론

   19세기의 선교에서 우리는 세계사에 대한 새로운 인식의 전환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19세기가 선교의 위대한 세기가 된 것은 위대한 교회와 위대한 선교사 그리고 위대한 선교단체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첫 번째의 변화는 심리학적인 변화라고 말했는데 지금 21세기는 새로운 심리학적인 변화를 체험하고 있다. 미국이 소련을 무너뜨리고 세계의 초일류 강대국이 되었지만 이제는 중국이나 아랍진영에서도 이러한 미국의 독주체제를 묵과하고 있지 않다고 하는 것이다. 마치 항성과 같은 태양의 자리에서 위성의 자리로 내몰린 기독교와 같은 형국이다.

   둘째 변화는 과학 경제적 변화였다고 말하는 데 이제는 과학 경제적인 차원에서 아시아가 상당한 속도로 미국을 따라잡고 있는 형국이다. 따라서, 미국이 과학과 경제만을 앞세워 선교하는 시대는 지나갔다고 본다. 성육신적인 선교사역이 큰형과 같은 미국에게 요구가 되는 시점이다.

제9장 유럽과 아메리카의 새로운 세력들(1792-1858)

   유럽과 아메리카의 새로운 세력들에 대한 비평을 하면 우리는 구두 수선공인 윌리엄 케리(William Carly)의 새로운 시도를 간과해서는 안된다. 그는 그 당시 특수침례교회(Particular Baptist Church)에 속해 있었다. 특수침례교회는 일반침례교회(General Baptist Church)와 다르게 교회의 행동하는 믿음의 주체를 평신도로 보고 있었다. 그는 이러한 모임에서 평신도가 주체가 된 L.M.S.(London Mission Society)를 구성하였다. 그리고 윌리엄 케리를 본받고 하는 것은 그는 researcher로서의 탁월한 기능이다. 대학에서 공부를 하지도 않은 그가 7개 국어에 능통하였고 인도에 가서는 벵갈어를 가르치는 교수로 사역을 했다고 하는 것은 전문인 선교사에게 부족하기 쉬운 연장교육의 중요성을 우리에게 제시해 주고 있는 것이다.

   인도에서 사역한 선교사 가운데 우리는 레지날드 히버를 기억할 필요가 있다. 그는 초교파적인 정신을 가지고 하나님의 왕국 차원에서 캘커타의 감독으로 3년을 일한 다음에 영국에 돌아와서 목회사역을 한 것이다. 다양한 계급사회에서 사역을 하면서 그는 다양한 가운데 조화(unity in diversity)를 이룰 수밖에 없는 선교지의 현실을 목격한 것이었다.

제10장 식민주의의 전성기(1858-1914)

   식민주의의 전성기에 대한 비평을 하면, 서구 선교사들은 제국주의적 방법에 의한 business나 통역관과 같은 일을 통한 선교사역을 했으나 그 가운데 교육기관과 의료, 구제사업을 통한 토착화 선교를 한 성공적인 사례가 많이 있었다. 이러한 선교방법은 전문인 선교의 좋은 방법 가운데 하나이다.

   특별히 허드슨 테일러(Hudson Taylor)의 선교전략을 전문인 선교의 입장에서 소개하고자 한다:

1. 테일러는 중국인의 관습과 언어를 중시하는 토착화 선교를 했다.
2. 그는 전문인 선교사의 T-3 유형에 속하는 경험, 훈련, 언어 등 여러 방면에서 선교준비가 되어진 성육신적인 선교사였다.
3. 그는 중국의 사찰에 들어가서 승려들에게도 복음을 증거한 생활 전도자형의 선 교사였다.
4. 그는 그 당시 중국 선교사로서 유명한 윌리엄 번즈 선교사와 동역을 하였으며 죠지 뮬러의 기도의 도움을 받고서 팀으로 사역한 팀 선교의 모델이었다.
5. 복음이 들어가지 않은 시골지역에 들어가서 복음을 증거하였고 중국내지선교회 (C.I.M) 와 중국 각 지역에 선교센터설립 및 운영을 후배선교사를 통해서 지속 적으로 실시한 순례자적인 선교사의 모델이었다.
6. 한마디로 그는 Faith Mission을 감당하였고 선교사의 체계적인 관리의 중요성을 깨닫고 실천한 삶을 자신의 Senior Missionary 때에 실천하였다.

제11장 로마, 정교회 그리고 세계(1815-1914)

   18세기 말 나폴레옹은 불운의 교황 비오 6세(Pius Ⅵ, 1717-99)를 죽기까지 괴롭혔으며 비오 7세(1740-1823)에 대해서는 회유와 탄압을 번갈아 사용하였다. 이렇게 나약했던 교황권은 비오 9세(1846-78)와 레오 13세(1878-1903)에 이르러 점진적으로 중앙집권화가 이루어 졌다. 이후 19세기는 교황 지상권주의(Ultra-montanism)의 세기였다. 1814년 비오 7세는 1773년 교황 클레멘트 14세가 해체했던 예수회를 다시 재건하였다.

   러시아 정교회의 미카엘 자코브레비치 글루차례프는 1792년에 사제의 아들로 태어나서 선교에 헌신을 하였고 성도의 삶이 침례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이는 개심의 과정일 뿐 가르쳐/지키게 하는 데까지 자라가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는 오늘날에도 새들백 교회(Saddlebck Community Church)의 릭 워렌(Lick Warren) 목사의 말과 마찬가지로 1차원적인 ministry에 불과한 교회내의 사역(성가대 봉사등)에서 벗어나서 흩어지는 교회로서의 2차원적인 사역으로까지 자라가야 한다는 것을 제시한 중요한 지적이다. 이러한 일을 위해서 총체적인 훈련(의지적 훈련, 인성훈련, 영성훈련, 그리고 극기훈련)이 소중함을 미국이 아닌 제3의 로마였던 모스코바의 나라 러시아의 이루쿠츠크의 안긴스코 교회의 머슴의 아들이었던 존 베니아미노프가 지적하였다. 여기서 전문인 선교사들은 서구 중심의 선교역사에서 벗어나서 동방 기독교에 대한 연구를 통해서 균형잡힌 선교전략을 수립할 수 있다고 본다.

제12장 어제와 오늘, 1914년과 그 이후

   마지막으로 선교대회의 중요성을 지적하고 싶은데, 1910년에 에딘버러에서 열린 제1차세계선교대회는 평신도인 죤 R. 모트(John Raleigh Mott, 1865-1955)를 대표로 해서 각 나라의 선교단체를 중심으로 초교파적인 선교대회를 수행했다는 점을 칭찬해야 할 것이며 "이 세대 안으로 세계를 복음화하자(The Evangelization of the World in this Generation)"이라는 슬로건을 통해서 학생자원운동에 더욱 큰 불을 던지게 되었다. 이는 전문인 선교가 앞으로도 죤 R. 모트와 같은 위대한 선교정치가 들을 통해서 초교파적으로(Suprainterdependent) 활성화될 필요가 있음을 시사한 것이다. 현재 T.I.E.(Tentmaker"s International Exchange)라는 세계전문인선교협의회도 이 일을 위해서 평신도 선교의 불을 당기고 있다.


제13장 선교부 체제에서 교회 체제로

   예배의 토착화 문제는 많은 선교지에서 논란이 되어왔다. 이러한 논란은 음악과 건축에서도 나타났다. 발리의 청년들이 기독교적인 가사를 옛 전통적 가락에 맞추어 부르기 시작했다. 그러나 장로들은 큰 충격을 받아 공식적인 예배에서는 부르지 못하도록 하였다. 인도의 몇몇 교회가 힌두 사원 비슷하게 건축되었을 때 기독교인들의 전반적인 감정은 전적으로 적대적이었다.
  기독교의 일치를 위한 노력은 계속되었다. “영국 및 해외 성서 공회”(British and Foreign Bible Society)는 1804년 발족 당시부터 설립 규약과 관점 및 목적에 있어서 초교파적이었다.
1819년 런던에 있는 선교회들의 간사들은 “런던 간사 협회”를 조직하여 1세기 이상 모임을 계속했다.
1885년 독일에서는 독일 개신교 선교 협회들의 상임 위원회“를 조직하였다.
1893년 미국에서는 북미 해외 선교 대회”가 개최되었는데 그 후 이 단체는 실질적인 행정권을 가지고 있지 않으면서도 능력과 영향력에 있어서 꾸준한 성장을 보여주었다.(685쪽)
1910 년 6월 21일 에딘버러 대회를 통하여 로마 카톨릭 교회밖에 최초로 영구적인 국제 기독교 협력 기구를 세웠다. “대회의 상임 위원회”(the Continuation Committee of the Conference)가 그것이다. 1921년에 와서야 존 모트(John R. Mott)박사를 의장으로 하고 올드함(J.H.Oldham)을 서기로 한 국제 선교 협의회(International Missionary Council)가 정식으로 발족하게 되었다
   교회가 느끼고 있는 허약성의 주요 원천이 바로 분열 자체라는 것도 의심할 나위가 없다. 선교지에서 일어나고 있던 활동의 중복현상과 경쟁, 그리고 선교세력을 하나로 집중시켜야 할 필요성에 기초를 둔 연합을 위한 실제적인 논의가 교회의 성장과 더불어 더욱 강력해졌으며 이러한 목적을 위하여 활동하는 기관의 수효도 증가하게 되었다.(691쪽)
1947년 28년 동안 수고한 남 인도 교회의 연합(C.S.I.(Church of South India))이 이루어졌다. 성공회, 감리교회, 장로교회, 회중교회, 그리고 바젤 선교 교회(스위스와 독일계)가 연합하였다. 침례교회와는 협의가 아직 요원하나, 루터교회와는 많은 진전이 이루어 졌다.

Ⅳ 결론

   세계에는 상당히 많은 종교들이 존재하고 있다. 또한 역사적으로 기독교 보다 훨씬 오래된 종교들도 많다. 이러한 시점에서 기독교는 다른 종교에게 어떻게 접근해야 하며 그들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품으로 인도해야 하는지를 고민하는 문제는 우리 앞에 당면한 과제라고 해야 할 것이다. 과거를 돌아보면 기독교는 선교라는 이름아래 크고 작은 너무나 많은 만행을 저지른 것 도 사실이다. 십자군 전쟁도 그렇고 선교를 가장한 식민지 정복도 그러한 경우였다. 하지만 그러한 방법은 전혀 기독교적인 방법도 아닐뿐더러 선교라고 말하기 조차 부끄럽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이러한 여파로 기독교에 적대감을 가지고 있는 민족 또한 상당수가 있다.
예수 그리스도는 그를 따르는 모든 자들에게 지상명령을 주셨다. 마태복음 28장 19절~20절/ 사도행전 1장 8절
하 지만 시간이 갈수록 과학과 인간의 사고력이 발달함에 따라 점점 신이 없는 것 처럼 느껴지는 세상이 도래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또한 현대에 팽배해 버린 포스트모더니즘은 인간들로 하여금 절대적 진리를 부인하고 상대성을 추종하도록 만들어 버렸다. 이에 따라 무신론자들은 차츰 늘어만 가고 이미 저들 나름대로 다른 종교의 형태로 굳어져 버린 사람들에게도 기독교만이 참 진리라고 외치며 나아가기엔 상당히 무리가 있어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그렇다면 선교적인 입장에서 볼 때 이러한 위기의 시기에 우리는 어떻게 현지종교들을 바라보고 기독교적인 접근을 해야 할 지 신중히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다.

  식민세계 이후에 대한 비평은 원하든 원하지 않던 선교사와 정부가 다종다양한 협력관계를 갖게 되었다는 것과 서구의 물질문명의 후광을 입고 선교가 발전했다고 하는 것을 무시할 수 없다는 이야기를 하게 된다.

   그러나, 1, 2차 세계대전을 지나면서 선교의 불확실 시대가 도래했고 이러한 시기에는 자유주의 신학에 기초한 인간화 중심의 선교가 꽃을 피우게 됨으로써 세속주의(secularism)와 인본주의(humanism)가 조선 중종 때의 이황의 퇴계학의 표현대로라면 인간의 칠정(희, 노, 애, 락, 애, 오, 욕)을 자극하며 현대 라오디게아 교회 안에도 만연해 있으므로 선교의 정체성과 상관성 사이의 균형(balance)을 상실하게 된 시기이기도 하다. 미국은 이미 1960년대에 이러한 사조를 경험하였고 한국은 1988년 올림픽 이후에 이러한 사조에 돌입한 것이다. 중국도 2008년 올림픽을 치르면서 극도의 세속주의를 경험하게 될 것이고 신유교사회주의 철학을 수립하지 않으면 안될 것이라고 본다. 이러한 영적인 공백에 복음이 전파되어야 한다고 본다.

   이러한 역기능적인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성령의 역사를 통해서 선교는 활성화되었으며 중국, 인도 등에 복음의 진보가 있었다는 니일(Neil)의 분석은 정확하며 복음이 들어간 나라들이 잘살기 시작하는 것도 우연의 일치가 아닌 것이다. 하나님의 축복이 머무르는 것이다.

   2001년 9월 11일의 빈 라덴(Bin Laden)의 미국의 경제 중심도시인 뉴욕의 Trade Center의 폭파사건 이후에는 이슬람 선교가 당분간 어려워 질 것으로 보이며 구제 사역과 지역사회개발 사역 그리고 장애인 사역 등 새로운 선교사역이 중요시될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중장기적으로는 이슬람교의 흥왕이 예고되었다고 본다.

   마지막으로, 기독교의 전파가 국지적인 것이 아니라 지구촌 전체에 퍼진 하나의 세계적인 종교현상으로 본 것은 옳은 것이다. 그러나, 앞으로의 수성을 하는 작업이 더 소중한 사명이라고 여겨진다. 하나님은 이러한 마지막 시대, 마지막 주자로서의 사명을 또 다른 선민(Chosen People)인 한국인에게 맡기셨다고 하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우리는 주변의 강대국 사이에 끼어있는 작은 나라요 은둔의 나라(hermited nations)라고 인도의 시성 타고르는 말했지만 이제는 IT 산업의 최강자로서 전세계에 축복을 나누어주는 큰 건물에 들어가는 열쇠와 같은 나라로서 축복의 통로(a channel)로서의 기능을 해야 할 시기가 온 것이다. 이미 1960년대에 미국의 붐(boom)이 끝나고 있는 징조들에 대해서도 스티븐 니일은 지적을 했는데, 미국은 청교도 정신을 회복하고 Pax Americana를 주신 선교의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하며 이슬람교를 새로운 파트너로 인정해야만 하는 결정을 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시점에서 기독교 선교사는 전문인 선교사들의 사역을 통해서 대미를 장식하게 될 것으로 보이며 특별히 노르웨이, 남아공화국, 호주, 그리고 한국과 미국에 의해서 파송되어진 전문인 선교사들이 다양한 가운데 조화를 이루며 아직도 복음을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20억의 미전도 종족에게까지 선포될 것을 선교미래사로 예견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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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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